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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2006/05/01 21:16
오늘 알바 왔더니 일이 별로 없었다. 쉬엄쉬엄했는데도 한 7시에나 끝났나? 이것저것 좀 주워 먹으면서 신문 하나 봐 주시고~ 수요일 고전문법 공부나 할까 .. 하다가 잠깐 전화가 와서 나가서 받는데 왠 처음 보는 사람이 문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안엣눈치를 살핀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왜 가끔 오거든, 특파원이나 .. 다른 언론사 서울지국 일본 기자들.

= 난노고요-데쇼-까 (어떻게 오셨죠?)

받던 전화 잠시 멈추고 가서 물어봤다. 그런데 이 사람 이상하게 당황하네. 음? 한국 사람인가?

= ...한국 분이세요?
- (화들짝 놀라며) 아, 네..한국어 잘 하시네요~

이봐이봐, 한국어를 잘하다니 .. 나 한국 사람이라고.
하던 전화 양해 구하고 끊고나서 다시 가서 물어본다.

= 어떻게 오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뜬금없이 무슨 A4 용지 두 장을 건넨다.
자세히 보니 무슨 카드사 약관이며 이런저런 혜택이 잔뜩 쓰여 있네. 아하 이 분..

- 네, 제가 이번에 종로 쪽으로 처음 나오게 되었는데요 .. 아직 인사를 못 드리기도 했고 해서 ..
= 아 ..
- 이게 이번에 새로 시작된 카드인데요, 보시다시피 혜택도 많고 .. 해외 나가실 때 마일리지도 쌓이구요 ..
= 음, 죄송한데 저기 지금 조금 바빠서요. 자료 제가 나중에 읽어 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 아, 그러시면 지금 얼른 이거 한 장만 살짝 적어주시면 제가 빨리 처리를..
= 아니요, 제가 연락 드릴게요. 자료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 한 40대 초반쯤 되었을까? 올해 겨우 20대 중반 들어선 녀석에게 연신 굽신굽신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냥 이유없이 .. 좀 화가 났다. 뭐 .. 영업이라는 거 모르는 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너무 저자세로 나오면 참 불편하다. 저리 웃는데 막 대하기도 그렇고.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드를 만들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쁘다는 핑계로 간신히 돌려보냈다.

그렇게 문닫고 들어와 이면지함에 자료 던져두고 자리 앉아 책이나 볼까 하는데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고개 돌려보니 아까 그 분이 신문사 안에 들어와 계시네. 아놔 이 분 .....

- 아, 연회비도 없구요. 만들기만 하시고 사용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따로 돈 나갈 일이 없구요 ..
= 저기 잘 알겠는데 지금 조금 바빠서요. 그리고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안 돼요, 신문사라 ..

막 들어오면 안 되긴 뭐가 안 되냐. 그게 신문사랑 무슨 상관? 그래도 마구 개념없이 들이대는 영업맨 스타일이 아니라 이 쪽에서도 그냥 마구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다. 저렇게라도 얘기해서 내보내야지. 최대한 좋게좋게 대하려고 고생중. 열심히 하시는 건 알겠는데 .. 죄송합니다 아저씨.

- 아이쿠, 그렇죠, 그렇죠, 제가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저기 그런데 이번에 새로 오셨나봐요?
= 말씀 잘 들었구요, 자료 제가 담당하시는 다른 분들께 말씀 드리고 연락을 따로 드리겠습니다.
- 되게 젊어 보이시는데 언제 입사하신 건가요?


...아저씨 죄송한데 사실 저 여기 기자가 아니라 그냥 알바생이에요 ( .. )

그냥 알바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냥 이야기를 이 이상 길게 끌고 싶지가 않더라. 어이쿠 어이쿠 과장된 몸짓으로 죽을 죄를 졌다는 듯 밖으로 나가면서,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친근하게 말을 걸려고 노력하는 아저씨.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능수능란한 영업맨이 아닌, 영업 매뉴얼을 외워 공식에 맞춰 그대로 행동하려는 듯한 묘한 어색함은, 그리고 그 위에 덧씌워진 계속되는 굽신댐은 괜히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하려면 좀 뻔뻔하고 능숙하게, 좀 자연스럽게 능글능글 들이대던가, 아닐 거면 굽신거리지라도 말던가. 왜 완전 어색하면서 굽신대기까지 하는 거냐고, 이 아저씨야. 제기랄.

거의 몸으로 밀어내다시피 문밖으로 밀어내는데 이번엔 몸으로 닫히려는 문을 막고 서서 뭔가를 건넨다. 조그마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사각 케이스.

- 그럼 이거라도 좀..
= 아니요, 괜찮습니다. 문 닫겠습니다. 좀만 비켜주세요. 죄송합니다.
- 제가 선물이라도 하나 드리고 싶어서..
= 읽어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죄송해요. 바쁩니다. 감사합니다.
- 저기 괜찮으시면 그럼 명함이라도 한 장 주시면..

말이 끝나기 전에 문이 닫혔고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우리 카드 아저씨 실루엣은 한 10초 정도 그냥 그렇게 문 앞에 서 있는다 싶더니 이내 터벅터벅 돌아갔다.


아저씨,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아저씨 열심히 사시는 거 나도 아는데 .. 근데 어떡해, 난 카드 더 필요 없는데. 뭐 지금은 어줍짢게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지만 나도 곧 나가서 내 밥그릇 찾아 뒹굴려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 나도 알아. 아는데, 근데 어떡해, 아저씨처럼 그렇게 어색하면서 쩔쩔매기까지 하는 사람 보면 난 그냥 화가 나. 이왕 들이댈 거면 좀 뻔뻔하게 능글능글 들이대, 아저씨. 그래야 나도 이런 구린 기분 안 느끼고 같이 뻔뻔하게 들이대면서 내보냈을 거 아냐. 그렇게 같이 부대끼고 주고받는게 사는 거 아니겠어. 그래야 서로 괜한 뒤끝 없이 금새 또 잊고 자기 길 가는 거 아니겠어.


아저씨 혼자 그렇게 축 처져서 굽신만 대다가 문 밖에 10초 서 있다 가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이 되잖아.





이러면 나 혼자만 너무 기분이 구리잖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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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