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티스토리 단축키를 활용하시면 이동이 더욱 편리합니다. < A=다음글 S=이전글 Q=로그인 >

WORKS/소설2007/08/04 11:53



비가 내린다.
난 벌써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약속을 잊어버린 걸까. 아니, 오히려 아직까지 기억하는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5년 전, 오늘 이 약속도 솔직히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얘기였으니.

올해로 드디어 난 30줄에 들어섰다. 서른 살만 되면 세상 많은 것들이 바뀔 줄 알았는데 아직 그렇게 커다란 깨달음은 없는 듯 하다. 15년 전 그 날, 열 다섯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도 오늘 처럼 무식하게 비가 쏟아졌었다. 그 날은 아버지가 3년 간의 해외지사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임하던 날. 오빠랑 내 학교 문제 때문에 가족은 남겨두고 홀로 떠났던 아버지인지라 오랜만의 만남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날 따라 하늘은 왜 그렇게도 울어대던지. 시커먼 하늘 아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고 간다. 이제 두 잔 째다. 앞으로 몇 잔을 더 들이켜야 눈 앞에 서 있는 널 볼 수 있을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눈빛. 생각해 보니 분명 그 날도 그랬다. 오랜만의 재회에 그간 서로 못 나눈 소식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우리 가족. 신호 기다리다 출발해서 좌회전 들어가던 순간, 급정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쿵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우리 차와 부딪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앞유리를 통해 내 눈에 들어온 광경. 달려나간 기사 아저씨가 일으켜 세우기도 전에 넌 혼자서 절뚝거리며 바로 일어나고 있었지.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우산도 없이 알 수 없는 그 무표정한 얼굴로, 열 다섯의 너는.

피곤하다. 언제나 그 날의 기억은 나를 힘빠지게 한다. 그 눈빛은 나른한 수렁 같으니까. 하염없이 빠져들고만 싶어지니까. 그랬다, 나는. 나는 너에게 빠지고 싶었다. 나는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틱한 첫 만남부터, 괜히 공허해 보이는 그 눈빛까지. 무슨 자만심이었을까 난 그 공허를 내가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이런 말 하면 넌 웃겠지만, 한때는 네가 키우던 강아지를 질투한 적도 있었다. 넌 한 번도 날 그 때, 그 강아지를 바라보던 눈빛으로 바라봐 준 적이 없었으니까.

창밖은 부딪히는 거센 빗방울로 연신 앞이 흐려진다. 빗방울 사이로 길 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다투는 한 연인이 눈에 들어온다. 연인이라는 관계는 무엇일까.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일까. 무엇이 저들을 연인으로 만들고 또 무엇이 저토록 저들을 화나게 만든 것일까. 그 녀석에 대한 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사랑?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어쩌면 .. 동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괜시리 머리만 아파온다. 난 어쩌면 사랑 따윈 모르는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 .. 무섭게 내리는 장대비는 항상 사람을 너무 감상적으로 만든다.

문득 정신차리고 괜시리 남은 커피를 들이켜 보지만 어느새 다 비웠는지 빈 잔이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도 나타나질 않는다.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 옆 자리에 앉은 어떤 골초 아가씨는 그 사이 벌써 재떨이에 담배 반 갑을 다 채워간다. 너도 누구를 기다리고 있구나. 나보다 먼저 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기다리고 있네 .. 너를 그토록 기다리게 만드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니.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토록 기다리는 거니. 멍하게 그녀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어지러운 담배연기 내뿜다 연기 사이로  나와 문득 눈이 마주친다.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양, 부끄러운 치부라도 내보인 양 서로 어색한 입웃음 살짝 꾸벅이곤 다시금 빗방울 부딪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정도 비면 들고 온 3단 우산 써 봐야 옷 다 젖겠는데 .. 나가다가 편의점 들러 장우산이라도 하나 사야 할려나 ..

적막한 카페 안에
빗소리만 점점 거세진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WORKS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2007/08/04
1969  (2) 2006/11/22
군대이야기 10 - 훈련소 - 꿈의 30연대  (4) 2006/11/21
Game  (4) 2006/04/06
시선  (13) 2006/03/22
[연재공고] 틈나는 대로 한 번 써 보겠습니다.  (6) 2006/02/05
Posted by GONS